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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에 대하여/구급활동

살고 싶지 않아요.

○ 상담일시 : 2012년 08월 25일 12:16

인적사항 : 여자/00세

○ 환자상태 : 하염없는 눈물

○ 처치지도 : 안정


점심을 급하게 먹고 근무에 임했다.

신고자가 여직원을 바꾸어 달라고 했다면서 전화 한 통이 연결되었다.

“말씀하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한참을 울다가 멈추면서, “네. 흑흑흑.... 살고 싶지 않아요.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와 딸과 함께 살고 있는데 장애를 갖고 있어요. 딸은 24살이에요. 흑흑...진짜로 살고 싶지 않아요.”

 

다시 한참을 울다가 말을 이어 간다.

“딸은 내 인생의 전부였어요. 그런데 그 딸이 요즘 이상해졌어요.

나는 딸을 위해 해달라고 하는 것 다해주었어요. 아끼고 아껴서 살면서 적금도 했어요.

딸을 위해서라면 딸이 원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다 해주었어요.

그런데 그런 딸이 그동안 들어놓았던 적금도 다 써버리고 나한테 반항을 하기 시작했어요. 흑흑흑....살고 싶지 않아요. 이젠 살 의미가 없어요.

 

나는 혼자예요. 아무도 없어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죽고 싶어요.

딸을 내쫒아 버렸어요. 예전에도 몇 번씩 딸과 싸운 후 과호흡 증상으로 병원에 간적 있어요.

딸을 내쫒은 것은 잘못한 것이죠?”

“아니요. 잘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잘못한 것도 아니에요.

이번일이 계기가 돼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어요.

오히려 잘됐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이번기회에 딸과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세요. 자식한테 무조건 다 해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적절한 채찍이 병행되어야지요.

무조건적인 사랑은 자식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패인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때론 이런 일들이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기도 하겠지요.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처럼, 하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딸도 스트레스를 풀을 상대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엄마였을 겁니다. 그 방법이 엄마를 서운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한 체... 엄마가 변해야 해요.

자식은 절대 변할 수 없어요.

“알겠어요. 제가 딸한테 전화를 해야겠어요. 고마워요.”

 

때론 이렇게 긴 상담을 요하는 전화도 받는다. 올해는 너무도 더웠다.

오늘 날씨는 오락가락 소나기가 퍼붓더니 또 맑게 갠다.

우리의 마음도 이런 날씨와 같지 않을까?

때론 폭풍우가 몰아치듯 깜깜한 밤이 되었다가 때론 소나기가 그친 후 환하게 비치는 햇살일 때도 있고...

 

환자와 긴 상담을 하면서 느낀 것은 나이대가 비슷해서,

그래서 같은 시대를 살아온 같은 세대여서 더 공감하고 더 공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한다.

상담자가 나보다, 아니 그 환자 보다 더 나이가 어렸거나 젊었다면

충분한 상담이 이루어졌을까?

 

오늘은 나이 들어서 이 일을 하게 된 나 자신이 이렇게 한사람을 위한 조언자가 ,

상담자가 되어줄 수 있었다는 것이 참 뿌듯하다. 오히려 그 환자가 나를 더 위로해준 시간이 된 것 같다. 또한 상담을 통해 나 자신을 반성하게하고 지금 이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를 다시 한 번 느껴본 시간이 되었다.

 

그래 내 역할이 이렇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퇴직하는 그날까지 즐기면서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