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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에서..

싸이렌 소리에....

언젠가 어느 시집에서 보았던

`너의 꿈이 무었이냐 묻는다면 나는 말할 것 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토록 살고 싶습니다` 라는 시귀가 생각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사랑하는 이와 같이 할 수 없다면 부귀와 영화, 권세와 명예가

무어 그리 좋겠냐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은 이제사 세상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 삶을 살다보면 자의든 타의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가져오는 많은 일들이 우리의 일상사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뉴스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화재현장의 참혹함은, 평온한 일상생활에서 한순간의 방심이나 실수가

얼마나 깊고 깊은 상흔을 우리사회와 가정에 남기는 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불은 우리 인간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면서도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지킬박사처럼

인간의 행복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인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전유물인 불을 몰래 훔쳐 인간들에게 전해준 죄로 무한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무분별한 인간행위에 대해 프로메테우스가 대신 짊어져야 했던 인간을 위한 속죄양으로서의 운명이 아닌지 모르겠다.

 

불에 관한 이야기는 비단 서양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이맥(단군세기 저자인 행촌 이암의 현손으로 연산군 때에 문과에 등과하여, 직간으로 괴산으로 유배되었으나 중종때 소환되어 1520년에 찬수관(궁중서적 관리)으로 재직)의「 태백일사」에 의하면

신시시대 즉 배달시대의 한웅천황(BC 3898)때 고시례가 주곡장관에 임명되어 우리 동이민족에게 불의 사용법을 전한 인물로 나오는데 불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고시례가 산에 올라 나무가지가 부딫쳐 불꽃을 일으키더니 곧 꺼지는 것을 보고

홀연이 깨달아 “홰나무”가지로 불을 만들기 위해 시도했으나 완전한 것이 못되었다.

다음날 다시 그 장소에서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줄무늬 호랑이가 나타나 돌을 집어 던졌으나

겨낭이 틀려 바위에 맞아 번쩍하고 불을 냈다. 이것을 보고 돌을 쳐 불을 만들고,

음식을 익히고, 쇠를 녹여 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아마도 고시례가 전해준 불은

그때 당시엔 충격적인 문화혁명과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후 사람들은 그의 은혜에 감사하여 고시례를 칭송하며 감사한지 수천년, 역사는 잊혀지고

이름만 남은 그의 흔적이 민간에서 아직도 구전을 통해 제사 때나 들녘에서 오참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으니 한국인의 피에 흐르는 역사적 유전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25년 전 ‘불’과 인연을 맺고 크고 작은 화재현장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욕심과 방심에 의해 일어나는 각종 화재를 보는 고시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작년에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가장 가까운 장소인 주택에서 우리의 이웃들이

화재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되었고 화재원인도 전년도에 이어 전기, 담배, 방화 순으로 나타나 화재예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정비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나 하나쯤이야, 설마,

그리고 대충대충 넘기는 우리의 조급한 습성이 반복의 쳇바퀴를 타고 삶의 기본터가 되는

가정에 큰 타격을 주고 일순간에 행복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겠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함석헌 선생은 우리가슴속에 흐르는

웅대한 기상에 대해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옛적의 어떤 날, 망막한 만주 평원의 거친 풀밭 위에 먼동이 틀 무렵,

훤하게 밝아오는 그 빛이 억만년 사람의 그림자를 본 일이 없는 흥안령(중국 만주서북지방과 동남지방을 가로지르는 대 산맥)의 마루턱을 희망과 장엄으로 물들일 때 몸집이 큼직큼직하고 힘줄이 불특불특한 큰 사람의 한 때가 허리엔 제각기 돌도끼를 차고, 손에는 억센 활들을 들고 선발대의 걸음으로 그 꼭대기에 턱턱 나타났다`

 

아! 눈을 감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보일 것 같은 그들의 모습과

조금 빨리, 남보다 많이 라는 조급함으로 왜소해지고,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에 가려 안전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달려온 현재의 우리 이웃들이 자연스레 대비가 된다.

 

월드컵축제로 온나라가 응원열기에 들떠있는 지금 이순간에도

각종 출동의 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차량 출동도 계속될 것이다.

소방관들에겐 일상적인 출동이지만 화재나 재해를 당하는 당사자들의 가슴은 타다만 잔해보다 더 검게 타들어 가고 그로 인한 상흔은 일생을 메고 가야하는 십자가의 멍에처럼

우리이웃에게 고난의 짐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그래 이젠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좀더 큰마음 큰 기상으로 느림의 미학을 음미하여 보면서,

행복을 지키기 위해 내가정 내직장의 안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정보혁명의 고속도로에서 제 갈 길을 향해 달리는 우리들에게 한번쯤 뒤돌아보는 여유속에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안전문화 정착이라는 결실이 맺어 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다같이 노력하기를 권하여 본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싸이렌소리에 출동대원과 현장의 안전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