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의 유래
화재나 구조.구급이라고 하면 119번이 상식화되어 있다.
그러나 왜 119일까? 그것은 일본의 소방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일본에서 사용되었던 번호가 그대로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벨이 전화를 발명한 다음 해인 1887년에 이미 전화를 수입하여 1897년에 동경-열해간에 처음으로 전화를 설치하였고, 1880년에는 동경과 요코하마에서 시내전화를 개통하였다. 전화의 보급에 따라 화재통보도 증가 하였으나, 당시의 전화는 호출을 받아 교환수가 하나하나 손으로 연결하였고 또한 전화국에서는 화재에 있어서도 긴급 우선취급을 하지 않았으므로, 소방서로 통보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 던 것으로 보인다.
1917년 4월 1일 화재탐지전용 전화가 동경에서 제도화 되었는데, 이것은 전화로 "화재"를 알리면 전화 교환수가 바로 소방관서로 연락하도록 하였다. 그 후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자동교환화가 추진되어 1926년에 동경. 교토전화국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어 화재전용 전화번호를 112번으로 결정하였으나, 접속에 착오가 많아 1927년부터는 지역번호(국번의 제1숫자)로서 사용되고 있지 않는 "9"번을 도입함으로서 "119"번이 탄생하였다.
외국의 화재 및 구조구급 전화번호는 미국이 911번, 런던과 홍콩이 999번, 베를린이 112번, 파리가 18번, 코펜하겐과 시드니가 000번이다.
※ 자료: 일본(재)오사카시소방진흥협회, 소방에관한 119가지 이야기
소방조직관리론(김광수 외 2), 덕유, 2001
1925년 조선총독부 지방관제 개편에 의해 경성부에 소방서를 설치하도록 하여 경성소방서(우리나라 최초 소방서)를 개서하고 소방서장 밑에 주임을 두고 소방서에 펌프반, 수관반, 파괴반, 사다리반을 두어 현장대응 중심의 조직을 운영한 것으로 보이며 그 후 주요도시에 일제통치 기간동안 경성소방서를 비롯 8개소(경성, 부산, 평양, 청진, 용산, 인천, 함흥, 성동)를 설치하고 수관자동차와 파괴용자동차를 도입하고 마필차를 동력차로 대체하여 보다 진일보한 진압체계를 갖추었으나 도시지역을 제외한 농촌지역에서는 완용펌프가 널리 사용되었다.
화재발견 수단으로 각 소방조(후에 상비 소방기관)에 망루를 설치하였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망루는 남산에 세운 소방조 망루(1917)였고 화재신고 수단으로 전화가 개발된 지역에는 119전화가 설치되었다. 화재를 발견하였거나 신고를 받았을 때는 사이렌, 경종, 나팔 등으로 통지하였으며 화재신고가 들어오면 먼저 소방관이 오토바이로 출동하여 현장상황을 파악하고 인명구출 작업을 선행 하였다. 각 소화조에는 소방용 기계.기구 적치장을 두었다.
화재신고제도의 변천
1426. 3. 3 화재전용 종 사용
1908. 5. 24 순종임금 망루건축비 하사(1917. 1. 16 근대 망루근무 개시)
1935. 10. 1 화재신고 전화번호 119 도입(범죄신고 112는 1957. 7. 21 도입)
1978. 3. 10 유무선 통신장비 소방서 설치
2003. 3. 10 통합신고체계 구축(서울 종합방재센터 설립)
2003. 5. 1 인터넷 119안전신고센터 개설
2004. 7. 1 휴대폰 문자메세지(SMS) 신고체계 구축
2005. 4. 1 위치정보시스템(GPS)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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