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포석정

고시례 2013. 11. 30. 23:30

네비에 의지해 길을 정했다.

포석정 부근에서 입구를 찾지못해 마을 좁은길로 가보니

나처럼 헤메고 들어오는 차가 많았던지 마을 공터에 주차장이 보인다.

(입구로 길을 찾아 들어오면 정식주차장이 마련되 있다)

 

오후시간 그리고 초겨울의 영향인지 인적마저 드물다.

신라 경애왕 4년(927) 왕이 후백제 견휀 군대의 습격을 받아 최후를 마친곳이라 그런지 비장함 마져든다.

훗날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실정의 상징으로 포석정이 회자되리라 그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이젠 유적이 되버린 포석정에서 지난날을 생각해 본다.

 

 

 

포석정지(사적 제1호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포석정은 신라 왕실의 별궁으로 역대 임금들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지금은 정자등의 건물이 모두 없어지고 마치 전복처럼 생긴 석조 구조물만 남아 있다.

 

화강석으로 만든 소로의 길이는 약 22m이다.

임금은 이곳에서 신하들고 더불어 잔을 띄우며 시를 읊었을 것으로 보인다.

포석정에 대한 기록은 신라 제 49대 헌강왕이 신하들과 어울려 여흥을 즐길때

남산의 신이 왕앞에서 춤을 추자, 왕도 따라 추게 되어 이로부터 '어무산신무'라는 춤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있었으나, 오늘날까지 그 자취가  이처럼 잘 남아있는 것은 매우 드문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수 있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