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리고 생각

칭기스칸과 그의 군대

고시례 2007. 5. 21. 12:31

칭기스칸과 그의 군대


유목 이동문명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몽골족은

유라시아의  광활한  초원지대에  펠트로  지어진  천막집(1시간 이내 헐고 금방 갖고 다닐 수 있는 임시구조물)을

짓고  이동생활을  영위해  오면서  농경문명(해양제국)의  영구적인  정착생활과  부유함 편안함 사치스러움을 동경해 왔다.


이들은  유목민  생활  대부분을  말위에서  보냄으로써  말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타고난  기병으로  자라게  되었고  자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타고난  불안정성과  제한된  목초지를  얻고  지키기  위한  종족간의  투쟁으로,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능력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난폭하고  호전적인  부족이  양성되게  되었다.


몽골군에게는  말이  군사용 이동수단(4~6마리의 말을 끌고 다니며 일일 3~4백km를 이동)과 

식량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여  전쟁에서  필요한  기동성과  보급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자족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몽골군의 전투식량 보르츠

요즘의  육포에  해당하는  것으로  고기를  말려  찧어서  만들며  말안장 밑에  넣고  다녀도 

무게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볍고  두달 정도  보급 없이  견딜 수  있는  양을  가지고  다녔다.

보르츠는  소의  방광에  집어넣어  보관도  하는데,  방광속에는  잘 건조된  소 한 마리 분의  건육이  들어간다.

방광에  넣은  보르츠는  보존기간이  길어,  몽골병사  한명이  보르츠  한 자루면  1~2년을  버틸 수  있었다.


이들의  화살은  서양군인들이  대궁을  쓰는데  반하여

대궁보다  짧은  복합활(compound bow : 뒤쪽은 힘줄 층으로 되어 있고 내부표면은 각층으로 이루어져 있거나  혹은 가운데에 나무 골격으로 불룩하게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여  300야드  떨어진  곳에서도  살상이  가능하며, 

달리는  말에서  화살을  쏘는  것은  물론,  뒤로 돌아서도  화살을  쏠 수  있었으며  화살 앞에는  금속성  송곳바늘을  장착하여  그 당시  가장  두꺼운  갑옷과  투구도  관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은 김인규 낙서실(http://blog.daum.net/seoul29/10440860)에서


이들의  군사작전은  스피드와  기습(기만능력)을  기본으로  양동작전(말의 스피드와 포착의 타이밍,

세련된 마술을 결합하여 기병이 공격 후  공포에 질린 것처럼 후퇴하여 유인 후 매복공격)과  기습공격에  능통하였고

적의  심장부를  강타해  적이  우왕좌앙  하도록 하는  송곳전법(마치 소용돌이 치듯 적의 약한곳을 집중적으로 공격 하여 적진을 와해 시키는 전법)을  사용하였으며,  오늘날의  별동부대격인  단독공격부대,  망구다이(mangudai)를  운영하였다.

   안세영 교수님(서강대 국제대학원) 의  협상의 기술(페땅의 반면교사!  국운을 건 협상)  중에서

 

 http://blog.daum.net/seoul29/10440860


몽골의  전투대형은  5열 횡대( 전면 말은 갑덧무장 병사, 철갑모자 쇠가죽 갑옷 또는 가죽철제갑옷  12피트 길이의 창 활 언월도 전투용도끼 철퇴로 무장한 중기병 2열,  후위 작은칼 투창 활의 경기병 3열) 로 편제되어  대규모  부대단위  전투에서도 그 효용성이  입증되었고  몽골군의  기병은  단순성과  기동성으로  전투에  있어  그 효과가  배가되었다.

 http://blog.daum.net/seoul29/10440860


전쟁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유럽의  정보를  시시각각으로  알려주는  첩자(상인)를  모집하여  보를  수집하고,

아조브해에서는  무역소를  가진  베니스인들과  비밀 동맹단체를 결성하여  정보수집능력을  극대화하였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칭기스칸의 10만 기마군단(푸른군대)이 중국과 이슬람제국을 누루고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목이동 문명의  열린 마인드와  정보전,  스피드와  기습능력이 복합된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을 하였기 때문이며  이러한  정복전쟁을  통하여  그들이  꿈에도  그리는  농경문명의  부유함  편안함  사치스러움을  획득할 수  있었고  강력한  세계연방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하겠다.

(밀레니엄맨 칭기스칸을 읽고서...)

 

 잡다한 애기들(http://blog.daum.net/whgnd/3115211)에서


지나간  1000년에서  가장  거대한  사건은  몽골이라는  단일 종족이   전 세계에  자신의  의지를  완벽하게  발휘한 것이다.

칭기스칸과  그의  후손들은  유라시아 대륙에  광대한  자유 무역지대를  만들어 냈고,  동서양 문명의  연결을  강화했다. 

이는  중세의  GATT 체제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인터넷이  발명되기  이미  7세기 전에  전 세계적 커뮤니케이션을 개척해  놓았다.

칭기스칸은  사람과  기술을  이동시켜  지구를  좁게  만든  인물이다.

그는  중세까지  존재했던  세계의 모 든 것을  뒤흔든  새로운  제국을  출현시켰다. 

칭기스칸의 제국.  그들의  역사는  짧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워싱턴포스트>중에서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살 때,   아버지를  잃고  쫒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 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었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  태어 났다고  탓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  친구도  없고,  병사로는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 인까지  모두  합쳐  200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 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  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빰에  화살을  맞고도  죽었다.    살아났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순간,  나는  칭기스칸이  되었다.

<칭기스칸 어록 중에서>